안양지사 박미옥 팀장님께 감사함으로 글을 올립니다.
홍승애
2011-11-13
조회 1,583
얼마전에 장례를 치르고 감사한 마음으로 저희 부모님 대신 글을 올립니다. 얼마전에 저희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오래전부터 당뇨가 있으셔서 꾸준히 약을 드셨었습니다. 저는 어릴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아왔기때문에 침대 한구석에 사탕을 놓아두고 시간이 되면 스스로 주사를 놓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워낙 오래전부터 앓아왔던 당뇨병은 할머니께 합병증을 가져다주었고 할머니께서는 올해 초부터 수원에 있는 아주대병원에 입원하셔서 수술을 하셨습니다. 거의 10개월동안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할머니께 제가 해드릴수 있었던건 고작 중환자실 면회시간에 찾아가 얼굴을 비추는 것 뿐이었습니다. 바쁘고 혹은 귀찮다는 핑계로 자주 가서 얼굴을 보여드리지도 못하는 저를 할머니께선 늘 반갑게 맞아주시곤 했습니다. 제가 가면 손을 꼭 붙잡고 소리도 나오지 않는 입을 열심히 움직여가며 고3인데 공부는 열심히 하냐던 할머니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럴때면 저는 하얗게 변해버린 할머니의 머리카락과 몸에 잔뜩 연결된 기계들을 보며 눈물이 터질것만 같았습니다. 퉁퉁 부어버린 할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꼭 대학에 붙어서 할머니한테 제일 먼저 말하러 오겠다며 자주 오지못한 미안함을 애써 감추곤 했습니다. 그런데 10월이 넘어가면서 할머니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고 저희 가족들은 할머니께서 곧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소리에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가게를 운영하시면서도 매일같이 차를 타도 1시간정도 걸리는 병원까지 다녀오시는 저희 부모님과 고모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계신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10월이 끝나가던 어느날 학교에 가기위해 일어난 아침에 저와 동생들만 남겨진 집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새벽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엄마의 전화였습니다. 울음이 가득 담긴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실감은 나지않고 멍하기만 했습니다. 서둘러 동생들을 깨우고 영정사진을 챙겨 장례식장에 도착했을때까지도 그저 멍한 기분이었습니다. 식장에 도착해서 푸석한 얼굴의 부모님과 고모를 보고서야 조금 울컥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번도 진지하게 할머니의 부재를 상상해본적 없었기에 이 현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손녀인 저도 그렇게 멍했는데 저희 부모님과 고모께서는 얼마나 큰 상실감에 빠지셨겠습니까. 생전 처음 치뤄보는 장례라 고모도 아빠도 정신이 없었을 때 새벽부터 찾아와 도와주신 분들이 안양지사 박미옥팀장님과 의전팀장님입니다. (의전팀장님 성함이 잘 기억이 나질 않아서 너무 죄송합니다.) 새벽부터 병원부터 식장에서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저희 가족들에게 사소한 것부터 꼼꼼히 알려주시고 도와주셨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기간동안 지켜야할 것들이나 장례절차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주셨고 저희 가족의 입장에서 도와주시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음식 하나까지 세세하게 도움을 주시는 팀장님들 덕분에 저희는 처음 치르는 큰일을 문제없이 잘 끝낼 수 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음식값을 조금이라도 줄여주려고 물에 녹차티백을 넣어서 재활용해주시는 그 분들의 수고 덕분에 음식값도 절반밖에 안들었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듣고 팀장님들이 참 대단하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아직 어려서 잘은 모르지만 사실 고인을 보내드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처음 본 사람들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배려하고 헌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 가족이 할머니를 잘 보내드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병원에서 오랫동안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신 할머니를 예쁘게 잘 보내드릴 수 있게 도와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대학합격소식을 전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무거운 마음을 조금은 풀 수 있었습니다. 또 부족한 글로나마 감사를 전하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좋은 곳에서 저희를 내려다보고 계실 할머니를 생각해서 더이상 죄송한 마음은 그만 담아두려고 합니다. 할머니를 위해 그리고 도와주신 감사한 분들을 위해 늘 기도하겠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